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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문학에서 보낸 일 년을 돌아보다

사비 문학 회원이 되기까지 망설였다. 시인도 수필가도 아닌 시 낭송가로 활동해도 괜찮다는 답을 들었다. 최규학 지부장님의 추천과 김인희 사무국장님의 따뜻한 권유가 그 망설임을 기분 좋게 풀어줬다. 3월 정기총회에서 사무차장이라는 이름을 단다. 처음 뵌 분들도 있지만 시 낭송을 배우며 알게 된 회원분들이 계셔서 낯설지는 않았다 민경희 화백님의 배꽃 시 낭송 축제로 신암마을을 방문한다. 전에 다니던 직장 일로 자주 왔던 마을인데 그렇게 오래된 배나무와 보기 힘들어진 염소가 반갑기까지 한다. 봄날 사비 문학기행으로 옥천 정지용문학관을 다녀온 일은 지금도 머릿속에 특별하게 남아있다. 버스 안에서의 특강은 마치 학생이 되어 수학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더 들뜨게 했다. 사진으로만 구경하던 이흥우 고문님의 시화원은 아..

일상을 담다 2023.12.25

마음의 채혈을 읽다

더 행복 시 낭송 송년 콘서트를 하며 한 가지 마무리를 합니다. 시 낭송이 맺어준 인연으로 1월에 더 행복 시 낭송 아카데미 밴드가 만들어졌습니다. 김춘경 지도교수님의 졸업생들이 더 깊이 넓게 배움과 친목을 이어가는 공간입니다. 대전 시민 대학 '행복한 시 읽기, 시 낭송 마스터' 수업 종강 발표회와 졸업생들의 축하 시 낭송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참석 못 하는 분들을 위해 실시간 공연 실황을 미트 프로그램으로 열어놓고 함께 했습니다. 무대 위에 걸린 현수막과 한 분 한 분 낭송할 때마다 띄우는 배경 화면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레드와 그린으로 드레스 코드까지 맞추니 화려한 성탄 기분이 물씬 납니다. 설렘, 떨림, 긴장감이 한데 어우러져 시를 더 가까이 가슴에 담는 시간입니다. 집에 돌아와 종이가방에 담긴 선..

일상을 담다 2023.12.23

마음을 읽다

한 주의 첫날 월요일 아침은 부소산 산책으로 엽니다. 비 예보가 있는 아침 하늘은 잔뜩 흐려있습니다. 한 손엔 우산, 다른 한 손은 새벽에 백석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정성껏 필사한 종이를 듭니다. 부소산 정문에 서면 나름 정해진 규칙을 시작합니다. 복식호흡의 첫 번째 연습으로 입을 꼭 다물고 10분 정도 코로 숨 쉬며 걷기를 합니다. 오르막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빠르게 뛰어오릅니다. 내리막은 천천히 내뱉으며 숨을 세어갑니다. 외우고 싶은 시를 혼자서 중얼거리는 시간입니다. 저쪽에서 사람이 보이면 목소리를 줄이고 멀어지면 소리를 키우며 보다가 안 보다가 시를 외웁니다. 태자골 숲길 흙길을 걷습니다. 맨발로 밟고 또 밟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지요. 한 시간반 정도 지났을까요? 다시 정문에 돌아오면 마음..

일상을 담다 2023.12.11

텃밭의 휴일 아침

주말이면 두 아들로 북적대던 집이 이번 주는 고요합니다. 남편은 친구와 공 치러 가고 아들들은 친구들과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은 잠시,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편하고 좋습니다. 요즘 공부하는 신석정 시 '역사'를 위해 텃밭에서 달래꽃을 찾습니다. 이른 봄 가장 먼저 밥상에서 입맛 돋워주는 것이 냉이와 달래장이지요. 텃밭은 그새 장마에 더 쑥쑥 커버린 풀밭이 되어 있습니다 한판 대 결 하듯 작정하고 두어 시간 쪼그려 앉아 풀을 뽑고 한쪽 귀퉁이에서 달래잎 줄기를 찾았습니다 꽃은 없고 주위 땅속을 파보니 달래 씨가 우르르 모여 있더라고요.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달래꽃을 본 거 같기는 한데 달래장을 만들어 먹을 줄만 알았지 꽃 피우는 생각을 전혀 못 했습니다. 하찮게 여긴 거 같아 미안..

일상을 담다 2023.08.13

제1회 부여 문학제를 열다

밤새 눈이 쌓이고 추위가 몰려드는 아침을 맞습니다. 부여군민과 함께하는 2022 부여 문학제 및 부여 문학상 시상식이 있는 하루입니다. 문학 행사라는 말만 들어도 좋고 설렙니다. 사비 문학 김인희 사무국장님의 부탁으로 행사 안내를 돕기 위해 서둘러 도착합니다. 제1회로 열리는 부여 문학제는 (사)한국문인협회 부여지부(지부장 최규학)의 주최로 12월 16일 오후 2시 부여문화원 소강당에서 열렸습니다. 1부는 시상식 및 출판 기념회를 하며 축하 자리 만들고 2부는 부여 필링 예술단과 함께 부여 시 낭송가들의 낭송과 연주, 무용, 시조창, 노래로 채워졌습니다. 제1회 부여 문학상에는 아동문학으로 이기동 목사님께서 받았습니다. 최규학 지부장님은 부여 문인협회를 위해 지원을 해준 부여군과 한국문인협회 대표자 회의..

일상을 담다 2022.12.17

부여의 가을이 높다

11월 1일은 시의 날입니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이태원에서는 청춘들의 대형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나라는 애도 기간입니다. 고인과 유족분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지역 곳곳마다 축제가 취소되고 연기되는 등 부득이한 경우는 행사를 축소하며 엄숙하게 치러지고 있습니다. 부여 리조트에서는 한국 문인협회 대표자 대회가 있습니다. 오래전 부안 신석정 문학관에서 시 낭송을 배우며 알게 된 박갑순 선생님이 부여에 왔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은 광명시에서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부여하면 떠오르는 것이 가장 먼저 나를 떠올리고 신동엽 문학관과 부소산의 단풍이라고 합니다. 부여 사무국장님은 사회를 잘 보고 특히 부여지부장은 멀리서 봐도 돋보이고 문학의 깊이가 크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신동엽 시인..

일상을 담다 2022.11.03

빨간신호등앞에서 만난 시

6월의 단비를 맞으며 생기 있게 한 달을 시작합니다 논산문화원 문화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기운이 올라 있고 마음이 즐겁습니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 핸드폰을 잠깐 열어봅니다. 페북에 올라온 이재무 시인의 신작 시가 눈에 딱 들어옵니다 운전 중에는 절대로 핸드폰을 보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너집니다 몇 해 전에 정신 번쩍 나게 했던 접촉사고를 불쑥 불러옵니다. 녹색 신호등을 만나면 운이 좋아 라는 말을 자주 붙였는데 지금은 빨간 신호등이 반갑기까지 합니다. 잠깐의 시간에 캡처를 하고 눈으로 후다닥 읽어봅니다. '무궁화', 와 '사과'라는 시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도 마음속으로 들어와 멈추게 합니다. 새벽에 되면 한 자 한 자, 한 줄 한 줄 정성을 들일 것입니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가다듬고 둥글..

일상을 담다 2022.06.08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시와 가까이하며 보낸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남편도 덩달아 외워가는 시가 늘어나고 있고요. 참 기분 좋은 일이지요 이재무 시 '뒤적이다'를 읽고 쓰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큰일이었던 것이 별 거 아닌 것이 되고 아주 작고 사소했던 일이 크고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2021년 아쉬운 듯 홀가분하게 잘 보내고 새 마음이 되어 힘껏 꼭 안아보듯 새해를 반갑게 맞이해야겠습니다. 뒤적이다 이재무 망각에 익숙해진 나이 뒤적이는 일이 자주 생긴다 책을 읽어가다가 지나온 페이지를 뒤적이고 잃어버린 물건 때문에 거듭 동선을 뒤적이고 외출복이 마땅치 않아 옷장을 뒤적인다 바람이 풀잎을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달빛이 강물을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지난 사랑을 몰래 뒤적이기도 한다 뒤적인다는 것은 내 안에 너를 ..

일상을 담다 2021.12.31

명랑 - 고영민

명랑 고영민 나는 내가 좋습니다 당신도 당신이 좋습니까 낮에 당신은 당신에게 뭐라 말합니까 밤에 당신은 당신에게 뭐라 말합니까 오늘 당신에게 내 생각이 잠깐 다녀갔습니다 오늘 나에게 당신 생각이 잠깐 다녀갔습니까 북쪽보다 더 북쪽 남쪽보다 더 남쪽인 당신은 가볍게 오고 싶지 않습니다 가볍게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나는 내가 좋습니다 당신도 당신이 좋습니까. -------------------------------------------------------------- 새벽마다 아껴읽듯 천천히 읽고 있는 이원 - '시를 위한 사전'(마음산책 2020) 읽다가 시가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누군가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간절 - 이재무

묶여있는 몸은 가까운 부소산 산책을 하며 풀고 만나지 못해 시들하고 가라앉는 마음은 시를 읽으며 달래고 있습니다. 요즘 이재무 시인의 시를 찬찬히 읽고 있습니다. 간절 이재무 삶에서 '간절'이 빠져나간 뒤 사내는 갑자기 늙기 시작하였다 활어가 품은 알같이 우글거리던 그 많던 '간절'을 누가 다 먹어치웠나 '간절'이 빠져나간 뒤 몸 쉬 달아오르지 않는다 달아오르지 않음으로 절실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음으로 지성을 다할 수 없다 여생을 나무토막처럼 살 수는 없는 일 사내는 '간절'을 찾아 나선다 공같이 튀는 탄력을 다시 살아야 한다. 문학과 지성 (2011) 시소의 관계 이재무 놀이터 시소 놀이하는 아이들 구김살 없이 환한 얼굴 넋 놓다 바라다본다 저 단순한 동어반복 속에 황금 비율이 들어 있구나 사랑이란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