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담다

사비 문학에서 보낸 일 년을 돌아보다

LO송이VE 2023. 12. 25. 09:35

사비 문학 회원이 되기까지 망설였다.

시인도 수필가도 아닌 시 낭송가로 활동해도 괜찮다는

답을 들었다. 최규학 지부장님의 추천과 김인희 사무국장님의

따뜻한 권유가 그 망설임을 기분 좋게 풀어줬다.

3월 정기총회에서 사무차장이라는 이름을 단다.

처음 뵌 분들도 있지만 시 낭송을 배우며 알게 된 회원분들이

계셔서 낯설지는 않았다

 

민경희 화백님의 배꽃 시 낭송 축제로 신암마을을 방문한다.

전에 다니던 직장 일로 자주 왔던 마을인데 그렇게 오래된 배나무와

보기 힘들어진 염소가 반갑기까지 한다.

봄날 사비 문학기행으로 옥천 정지용문학관을 다녀온 일은

지금도 머릿속에 특별하게 남아있다.

버스 안에서의 특강은 마치 학생이 되어 수학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더 들뜨게 했다.

사진으로만 구경하던 이흥우 고문님의 시화원은 아기자기한 손길로

가득했다. 사비 문학 회원님들의 시가 곳곳에서 꽃처럼 피어있다.

사비 문학 최초로 진행하는 시 창작 아카데미 수업은 시작부터 관심과

열정이 대단했다. 한 달에 두 번, 목요일 오후 4시가 기다려졌다.

최규학 지부장님의 말씀처럼 가슴이 울렁거리는 시간이었다.

티브이에서 한창 인기를 끌었던 일타 강사란 말이 실감 나게 다가왔다.

그저 보통의 학생으로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바로 취업을 한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렴풋이 아는 것도 기억도 없는 세상에나 다 처음 듣는 얘기뿐이다.

몰라서 느낀 부끄러움은 잠시, 읽어보고 또 찾아보고 알아가는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진 수업은 14회차에 나름 엄지척을 하며

뿌듯한 방학식을 맞았다.

 

한여름에 치러진 서동연꽃 축제 시화전 개전식은 많은 분이 참석하여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 연꽃향이 묻어와 더위를 잊게 했다.

저녁나절 남편 손을 잡고 아들 팔짱을 끼며 시화전 터널을 거닐었던 때는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금세 환해진다.

사비 문학회원들이 총출동하듯 다녀온 나태주 시비 제막식,

홍산 공공도서관에서 시 낭송으로 인연이 된 유순옥 문인화 작가님의

'먹그림 속에 핀 꽃' 출간과 개인전을 보면서 긴 시간 동안 준비해 온 열정에 놀라고

넘치도록 축하의 마음을 보냈다.

사비 문학 제37호를 꼼꼼하게 눈에 담으며 회원님들을 조금씩 알아간다.

바람결이 좋은 가을날에 열린  이흥우 고문님의 '시화원의 봄날' 개인전,

사비 문학 가을 문학기행으로 성균관과 길상사를 다녀오며 우리 교육의 역사를

찾아보고 백석 시를 다시 읽어본다.

호미 극장에서 열린 백제 미소 보살 환수의 염원을 담은 이유나 님의 사비 연무는

눈앞에서 숨죽이며 본 최고의 공연이었다.

 

2회째를 맞는 부여 문학제는 작년과 달리 더 많은 분들과 회원들의 참여로 빛이 났다.

지부장님의 인사말을 들으며 문득 사비문학은 나에게 눈송이처럼 다가온 설렘. 기쁨이라는

생각을 했다. 혼자 오지 않고 풍성하게 오고 차가운 가운데 따뜻한 기운이 있다는 말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돌아보는 사비 문학의 일 년이다.

문학 활동을 하며 인연이 많아진다. 자꾸 모임도 늘어간다.

그러다 보니 행사가 겹치고 실수가 생긴다. 무엇보다 남편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컸다.

취미활동으로 바깥 활동이 잦았다. 살림하는 주부는 남편 불만을 외면할 수가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절제를 떠올리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밤새 내린 눈 위에 나뭇가지로 써 본다. 가장 좋은 시간은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