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23

깨알 점에 웃는 가을

"오후에 시간 되니?" 친정 언니의 전화다. 형부는 집집마다 벼 추수로 한창이고 언니는 밭작물 수확에 바쁜 몸이다. 구십 넘은 시아버님이 옆에서 거드는 게 편치 않아 여동생을 부른 것이다. 대추 수확을 마무리 짓고 여유가 나는가 싶어도 시골 일이란 게 끝이 없다 특히 밭작물은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든다. 거뜬한 몸으로 겁 없이 척척 해내던 밭일도 나이 들면서 겁이 난단다. 그 마음을 알기에 주저 없이 언니네 들깨밭으로 간다. 대추밭 하우스의 옆에 들깨 털 준비가 되어있다. 파란 멍석을 깔고 그 위에 망사멍석을 깔았다. 도리깨는 없고 나무 막대기와 사과를 담는 박스를 엎어놓았다. 아침 일찍 이슬로 젖은 들깻단을 옮겨놓았단다. 잘 마른 들깨는 살짝 건들기만 해도 우수수 소리가 난다. 수북하게 쌓인 들깻단이 ..

일상을 담다 2023.10.24

부여의 가을이 높다

11월 1일은 시의 날입니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이태원에서는 청춘들의 대형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나라는 애도 기간입니다. 고인과 유족분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지역 곳곳마다 축제가 취소되고 연기되는 등 부득이한 경우는 행사를 축소하며 엄숙하게 치러지고 있습니다. 부여 리조트에서는 한국 문인협회 대표자 대회가 있습니다. 오래전 부안 신석정 문학관에서 시 낭송을 배우며 알게 된 박갑순 선생님이 부여에 왔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은 광명시에서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부여하면 떠오르는 것이 가장 먼저 나를 떠올리고 신동엽 문학관과 부소산의 단풍이라고 합니다. 부여 사무국장님은 사회를 잘 보고 특히 부여지부장은 멀리서 봐도 돋보이고 문학의 깊이가 크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신동엽 시인..

일상을 담다 2022.11.03

고소한 가을 맛을 보다

뭘 해도 좋은 아침을 맞습니다 한 가지 일을 즐겁게 마치고 나니 하기 싫었던 일들도 성큼 손에 잡힙니다. 약속된 일에 마음을 쓰며 호미를 들지 못했던 텃밭을 이제야 눈이 갑니다. 배춧잎은 자리를 채워가듯 크고 어린 무잎도 무성하게 잘 자라 솎아줘야 합니다. 영글기를 바라며 미뤘던 땅콩을 캡니다. 미리 두어 줄기 캐서 맛을 보긴 했는데 어찌 크기도 작고 야무지지 못한 것이 영 시원찮습니다. 다글다글 달려 나오는 땅콩이 좋아서 호미질이 빨라집니다. 금방 캔 땅콩은 쪄서 먹는 맛이 참 좋습니다. 그 맛에 해마다 땅콩을 심습니다. 맛을 올리려고 소금도 잊지 않고 넣어 삶습니다. 나머지는 아까울 정도로 좋은 가을볕에 바짝 말립니다. 손끝이 아플 정도로 단단해진 껍질을 벗겨 노릇하게 볶습니다. 진동하는 고소한 냄새..

일상을 담다 2022.09.21

4형제가 빚는 송편~

시댁은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집에서 떡을 합니다. 이번 추석에도 4형제 부부가 빙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습니다. 모두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 자라서 부담도 없고요. 막내인 남편은 허리디스크 시술 핑계로 소파에 벌러덩 눕습니다. 몇 개라도 만들어보라고 해도 딴청 부리며 막내 티를 냅니다. 한입에 쏙쏙 들어가도록 앙증맞게 만드는 큰 형님, 굳은살로 투박해진 손으로 야무지게 만드는 큰 아주버님, 얼른 만들어 끝내고 싶어 큼직하게 만드는 둘째 아주버님과 셋째 아주버님 적당한 크기로 예쁘게 빚는 둘째 형님과 그 옆에서 나름 예쁘게 빚으려고 애쓰는 저입니다.ㅎㅎ 셋째 형님은 만들어지는 대로 찜기에 찌고 있습니다. 미리 따다 놓은 솔잎을 맨 밑에 깔고 면포를 깔고 그 위에 빚은 송편을 가지런히 올리고 물이 펄펄 끓으면..

일상을 담다 2021.09.26

하루의 시작은 숲속 산책으로

추석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추석 이틀 전부터 동생 가게를 시작으로 추석, 친정아버지 제사, 큰아들 생일까지 이틀 간격으로 있다 보니 일주일이 후딱 지나갑니다. 올해는 시댁도 친정도 코로나 확산으로 빠지는 식구들이 많고 비까지 내려 몸도 마음도 편하고 여유로웠습니다. 느긋하게 텃밭에 열무도 솎아 김치와 물김치를 담아 친정식구들과 푸짐하게 나눴습니다. 제사까지 모시고 난 후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아침 일찍 부소산부터 오릅니다. 숲 속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이 한없이 맑은, 가을날입니다. 툭툭 떨어지는 도토리와 상수리를 찾는 청설모도 자주 보이고요. 다람쥐는 다들 어디갔나 보이지가 않습니다. 완만한 평지는 더 빨리 걷고 오르막길에서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뛰어오르기도 합니다. 콩닥콩닥 가슴은 뛰고 차오르는 ..

일상을 담다 2021.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