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담다

별밤 달밤 아래를 걷다.

LO송이VE 2024. 3. 19. 08:37

"와, 오늘은 별이 많이 보인다" 새삼스럽게 아이처럼 명랑해진다. 경칩이 지나고 저녁 7시는 여전히 깜깜하다. 저녁을 먹고 티브이 앞에 앉아있는 둥 하다가 약속처럼 밖으로 걷기 운동을 나간다. 한 시간 정도 부부의 대화가 소곤소곤 시작된다. 남편은 시간만 나면 자전거 라이딩을 즐겼다. 낮이 긴 여름에는 퇴근하자마자 바로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부여는 백마강변길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다. 주말에는 백제보와 공주보까지 거뜬하게 다녔다. 바퀴에 펑크가 나면 봉고차를 끌고 태우러 간 적도 몇 번 있다.

 

3년 전 허리 4번 5번 추간판 탈출증으로 서너 달을 고생했었다. 어느 날 신호 대기 앞에서 넘어지는 일이 있었다. 크게 아픈 곳 없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직업병 때문인지 갑자기 허리에 통증이 심해졌다. 통증이 점점 심해져 급한 대로 가까운 병원부터 찾았다. 의사는 허리 디스크라고 한다. 약을 먹어도 가라앉지 않아 이 사람 저 사람 말을 듣고 익산 병원에도 다녀왔다. 반쯤 구부러진 몸으로 간신히 걷고 차에 오르내리며 일을 했다. 큰 아주버님이 수술했던 대전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수술날 아침 취소하고 퇴원을 했다. 막상 수술하려니 덜컥 겁이 난다고 했다. 결국 도저히 걸을 수도 참을 수도 없을 만큼 심해진 통증으로 멀리 분당 척병원에서 시술을 받았다. 몇 주 동안 남편을 따라 껌딱지처럼 붙어 일일이 심부름을 했다. 농사일은 가까이 사는 큰아들이 내색 없이 잘 도와주었다. 의사의 당부대로 무겁고 힘쓰는 일은 안 하려고 조심하였다. 시술을 받고 지금껏 나름 허리 건강에 신경 써서 운동하고 있다. 다시 자전거도 타고 좋아하는 골프도 치고 있다. 시술을 받고 나서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다, 발등 한 부분은 여전히 감각이 없고 발바닥을 긁어주면 예전만큼 시원함도 덜하단다. 습관처럼 기분으로 느끼는 정도다. 그렇게 허리 통증으로 삶의 질이 떨어졌다는 푸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샤워가 끝나갈 무렵 허리를 살짝 구부리다가 뜨금 했단다. 순간, 아차 싶었단다. 경험에서 비롯된 직감은 빗나가지 않는 모양이다. 슬슬 시동이 걸리듯 통증이 느껴진다. 집안 결혼식도 못 가고 수술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전에 수술하려고 했던 병원에 전화를 건다. 대전에서 꽤 허리 수술을 잘한다고 친구가 알려준 병원이다. 몇 개월 사이에 병원을 새로 지어 이전해 있다. 깨끗하고 종합병원 같은 느낌이 든다. 직원들도 친절하다. 더젠 병원에 일요일 저녁에 입원한다. 월요일 오전 내내 수술하기 전에 필요한 검사를 받는다. 12시 40분에 수술실로 들어간다. 3번 4번 수술과 꼬리뼈가 자라 신경을 누르는 부분을 깎아내는 두 가지 수술이다. 도중에 깨어날지 모른다고 전신마취를 한다. 수술실 앞에는 기다릴만한 공간이 없다. 병실에서 기다리다가 병실 복도 창가에 앉았다가 휴게실 의자에 앉아 티브이를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집도 챙겼는데 읽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머릿속만 걱정으로 복잡한 채 멍한 시간이 흘러간다.

 

오후 5시 10분쯤 병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의사가 병실마다 회진으로 들어온다. "이종구 님 보호자이세요?" 물으신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취에서 깨어나 회복 중이란다. 곧 병실로 올라올 거라고 안심시켜 준다. 남편이 누워있는 침대가 들어오고 간호사들이 우르르 여러 명 따라 들어온다. 실습하는 학생도 있는 거 같다. 노련한 간호사 두 분이 남편을 안정적으로 들어 옮긴다. 허리 부분에 네 군데 구멍이 뚫려 있고 호스가 달려있다. 그것 때문에 통증이 느껴지는지 비스듬히 눕는다. 보호자 없는 병원으로 간호사들이 살뜰하게 환자를 챙기며 돌보는 모습이 고맙다. 3일 후에 퇴원한다. 회복이 빠른 수술이라고 병원 홍보 간판에서 봤는데 그 말을 믿게 된다. 2주 정도는 집에서 편안하게 쉴 줄 알았다. 몸으로 힘쓰는 일이 아니라며 이틀 만에 일을 나간다. 말이 턱 막힌다. 안 된다고만 해봐야 소용없을 거 같고 큰소리 아닌 정말 조심하며 일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말이 비단결이다. 불안한 걱정과 달리 생각보다 회복 상태가 좋고 일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 보여 다행이다. 알바를 하지 않았다면 남편을 따라다녔을 텐데 그러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몸이 좋아지고 있다.

 

입원하러 가는 차 안에서 남편은 아내 걱정을 한다. 자신이 무너지면 강산 엄마가 마음고생을 얼마나 할지 걱정이란다. 지금 하는 일도, 논농사도 걱정이고 집안 꼴이 엉망이 될 텐데 한다. 아픈 몸은 뒷전이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는 없던 마음까지 솟구친다. 걱정하지 말라고, 수술은 잘 되고 별일 없을 거라고 말한다. "허리 괜찮아요?, 다리와 발은 어때요?" 요즘 매일 전화할 때마다,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새삼 별거 아닌 일상들이 소중하고 고맙게 다가온다. 매일 별밤 달밤 아래에서 걷기를 계속하자고 약속한다. 연애할 때는 가슴으로 말하고 결혼하면 입으로만 말한다고 하지만 손을 잡고 발을 맞춰가며 말없이 걸어도 좋다. 고른 숨소리와 발소리가 말해준다. 발목 힘이 없어 터벅터벅 소리 나던 발걸음은 차츰 뚜벅뚜벅 소리를 낸다. 이런저런 남 얘기도 나오고 어쩌다 우스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별도 달도 깜깜한 밤도 큰 웃음소리로 놀래준다. 오른손과 왼손을 나란히 잡고 걷는 발소리가가 정겹다. 마지막 바퀴를 돌며 내일 도시락 반찬은 좋아하는 것으로 더 신경 써서 싸줘야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