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담다

행복을 빚어 추억을 먹다

LO송이VE 2023. 9. 17. 07:26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선선합니다.

산에서 나는 예초기 소리가 집 앞까지 들립니다.

해마다 추석 전날에는 시댁 4형제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습니다.

아들, 딸과 손주들까지 다 모이면 서른 명이 넘는 대가족입니다.

식구들이 많아 차례 지낼 음식보다 끼니마다 먹어야 할 음식 준비가 더 힘듭니다.

특별한 요리를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도 부담이 됩니다. 다행히 위로 형님이 세 분 계시고

솜씨 좋고 손맛도 있으니, 막내며느리는 따라가기만 합니다. 그 밑에서 음식을 많이 배우게 됩니다.

남자들이야 '평소 먹는 데로 숟가락만 몇 개 더 놓으면 되지!' 툭 던지듯 말하지만,

여자들은 그게 아니지요. 매일 먹는 가족 말고 누군가가 함께하면 은근히 마음 쓰입니다.

 

큰형님은 멥쌀 불려 방앗간에서 빻아오고 동부 콩으로 속을 만들어 준비해 놓습니다.

송편 빚기는 못 하겠다며 남편은 반죽을 나서서 한다고 합니다.

크고 넓은 손이 치대며 빚기 좋게 부드럽게 반죽을 해줍니다.

큰아주버님부터 밑으로 동생들과 고사리손을 보태는 손주들까지

거실 바닥이 좁게 느껴질 만큼 꽉 찹니다. 둥글게 둘러앉아 송편을 빚습니다.

 

검게 그을린 투박한 손으로 이리저리 매만지며 만드시는 큰아주버님,

한입에 쏙쏙 들어가게 만들어야 좋다고 자그마하게 만드는 큰형님,

반죽 덩어리를 보고 언제 만드나 싶었던지 얼른얼른 크게 만드는 둘째 아주버님,

그 옆에서 둘째 형님은 크게 만든 거 혼자 다 드시라고 반듯하게 꼭꼭 오므리며 만듭니다.

음식 솜씨와 손맛이 좋은 셋째 형님 따라 아주버님도 예쁘게 잘 만듭니다.

애들도 앉은자리마다 비집고 끼어들어 조물조물 만듭니다.

예쁘게 만들어야 공부도 잘하고 예쁜 사람 만나 예쁜 아기 낳는다.”말도 빠지지 않습니다.

반죽을 떼어 손안에서 조물조물, 빙빙 둥글려 가운데에 동부 콩 속을 꾹꾹 눌러 담습니다.

이리저리 매만지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담습니다.

송편이 가지런히 놓인 쟁반 위에 반달 꽃이 피었습니다.

봄에 캔 쑥을 넣은 반죽은 더 쫀득하게 잘 빚어집니다.

 

큰아주버님 생신 때마다 어머님께서 쑥 송편을 항상 만들어주셨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뵌 적 없는 시아버님 때문에 4형제가 고생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어린 시절 얘기에 크게 웃었다가 그렁그렁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찜기에 김이 오르고 만들어지는 데로 쪄냅니다.

솔잎을 넣어야 쉬 상하지 않고 솔향도 좋다고 해서 송편 빚다 말고

마당에 있는 솔잎도 따옵니다.

소금과 들기름을 넣은 물을 발라가며 뜨거운 송편을 채반에서 식힙니다.

얼른 먹고 싶어도 기다리는 게 좋지요.

뜨거운 송편보다는 살짝 식은 송편이 제대로 맛이 느껴지지요.

 

이렇게 온 가족이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며 송편을 빚습니다.

재잘대며 웃는 손주들, 굵직하고 호탕한 남자들의 웃음소리,

웃음보가 터져 그칠 줄 모르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합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그 풍경도 변해갑니다.

꽉 차 좁게 느껴졌던 거실은 조금씩 비어갑니다.

송편 빚는 집도 거의 없어지고 있고요.

보름달처럼 차올랐던 추억들이 희미해집니다.

숨어버린 추석날의 풍경을 하나하나 불러봅니다.

송편 속에 좋은 기대와 바람들을 꾹꾹 담아 행복을 빚습니다.

환한 보름달아래 추억을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