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담다

친정 가는 봄날

LO송이VE 2023. 3. 14. 06:52

바짝 다가온 봄입니다.

거침없이 부는 바람결에 여기저기 큰불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웃 지역에서 논두렁을 태우다가 산불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솔가지며 나뭇잎이 수북이 쌓인 곳은 잔불이 되살아납니다.

다행히 때를 알고 내리는 비처럼 한바탕 요란하게  봄비가 내립니다.

처음 듣는 빗소리처럼 새롭고 반갑고 고맙습니다.

뾰족뾰족 올라오는 새싹들은 쑥쑥 싱그럽습니다.

작년보다 많이 욕심내서 심은 감자밭에 풀풀 대는 먼지가 얌전해졌습니다.

비가 다녀간 후 하늘도 공기도 햇살도 더 산뜻하게 눈 부십니다.

 

문득 친정엄마가 슬쩍 지나가는 말로 부탁했던  잡채가 생각납니다.

매일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점심을 드십니다.

종종 배달 음식을 드시거나 나가 사는 자녀들이 찾아와

이것저것 사준다고 합니다.

 

친정엄마는 그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사 먹는 음식보다는 아무래도 손맛이 들어간 음식이 더 맛있지요.

고기를 못 드시는 어르신이 계신다고 하여 피망 야채 잡채를 준비했습니다.

고기 대신 어묵을 넣고 색색의 피망과 텃밭에서 얼었다 녹았다 하며 단맛이 든 시금치,

양파는 아삭하게 볶아놓습니다.

진간장과 흑설탕을 넣어 삶아 낸 당면과 솔솔 버무립니다.

 

이제 눈감고도 뚝딱할 만큼 손에 익은 약밥도 만들었습니다.

잘 보관해 놓은 깐 밤과 냉동실에 항상 있는 대추와 건포도

대추즙이 있으니 먹고 싶을 때마다 해 먹게 됩니다.

 

"맛있어야 할 텐데, 어르신들 입맛에 맞아야 할 텐데"

주문을 걸듯 김치 통에 넉넉하게 담습니다.

" 지금 출발해요" 들뜬 목소리로 통통 튑니다

어린 시절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자랑하고 싶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던 그때처럼 그 마음입니다.

 

친정 가는 길이 어린 시절로 걸어가는 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