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담다

다시, 엄마의 봄은 안녕하다.

LO송이VE 2025. 3. 28. 08:45

다시, 엄마의 봄은 안녕하다.
 
비구름과 황사가 잔뜩 뒤덮인 아침이다. 친정엄마를 모시고 안양에 사시는 이모들을 만나는 날이다. 며칠 동안 집을 비울 듯이 다른 날보다 더 신경 써가며 집안을 치운다.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거실에 널려있는 것들도 제자리를 찾아준다. 평소 종종걸음은 날다람쥐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듯 빨라진다. 밥통을 열어 밥을 확인한다. 저녁에 먹을 갈치조림도 한 번 더 간을 본다. 냉장고에는 쪽파 나물, 배춧잎 나물, 묵은 김치를 들기름 넣어 푹 익힌 반찬통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 이 정도면 좋았어.' 미소 띤 혼잣말을 한다. 날씨와 상관없이 화창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우선 이웃 동네에 있는 말랭이 떡집에서 쑥인절미부터 찾는다. 냉동실에 아끼듯 숨겨놓았던 쑥 뭉치는 요긴하게 특별한 봄맛을 즐기게 해 준다. 떡 박스를 열자 고소한 콩가루 냄새가 훅 풍긴다. 노란 콩고물에 범벅이 된 쑥인절미가 보기에도 야들야들하다. 콩고물이 떨어질라 조심스럽게 입에 넣는다. 봄 내음이 진하게 입안 가득 퍼진다. "아침 먹었니? 언제 오니? 지금 준비하고 나갈까?" 무척이나 들뜬 엄마의 목소리에 맞추듯 속도를 낸다. 꼭 미용실에서 드라이한 듯 파마머리부터 눈에 들어온다. 밝은 네이비색의 반목 니트와 가벼워진 하늘색 점퍼가 너무나 잘 어울리신다. "이렇게 예쁜 모습은 사진으로 찍어야지" 마당 한쪽에서 어느새 활짝 핀 매화꽃 앞에서 핸드폰 카메라를 연신 누른다. 손가락으로 브이인지, 하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포즈가 귀여우시면서도 좋다.
 
구룡에 사는 친정 언니는 아침에 땄다는 딸기 두 박스를 차에 싣는다. 얼마 전에 개통된 구룡 IC에서 고속도로로 바로 진입한다. 한 시간 반 정도 달려 막내 이모가 운영하는 카페에 도착한다. 밖을 수시로 주시하고 계셨는지 막내 이모가 차를 보자마자 얼른 나오신다. 엄마를 보자마자 얼굴이 함박꽃이다. 조금 후에 큰이모와 둘째 이모까지 오시니 카페 안이 들썩들썩한다. "세상에나 살도 쏙 빠지고 얼굴색도 좋아지고 옷도 세련되게 입고 멋쟁이가 오셨네". 양쪽에서 손을 꼭 잡고 서로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엄마는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동생들과 뜨거운 시간을 맞고 있다.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안양이다. 엄마는 맏딸로, 바로 밑으로 여동생이 셋, 그 밑으로 남동생이 셋이다. 나이 들수록 외할머니를 쏙 빼닮았다고 이모들이 말씀하신다. 작년 봄에 둘째 이모가 무릎 수술을 하셨다. 동생이 수술했다는데 가봐야 한다고 해서 봄나들이 겸 다녀왔다. 네 자매가 모였으니 폭풍 같은 수다가 쏟아졌다. 처음 듣는 어릴 적 얘기가 신기하고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팔순 잔치를 언제 어떻게 할지 행복해지는 계획을 세우고 내려왔는데 날벼락같은 일이 닥쳤다.
 
그렇게 겨울에 있을 팔순 잔치를 기다리며 여름이 가고 있었다. 그러던 팔월의 어느 날, 엄마가 쓰러지셨다. 119구급차에 실려 대전 건양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검사가 시작되었다. 뇌경색이었다. 몇 주 전부터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다는 말을 더위 먹을 줄로만 알고 동네 병원의 약 처방만 믿고 지나쳤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왼쪽 다리와 팔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었다. 다행인 것은 정신은 아주 맑으셨다.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묻는 말에는 또박또박 대답을 잘하셨다. 열흘 동안 집중 치료실에서 엄마의 기저귀를 처음으로 갈았다. 서울 사는 오빠와 번갈아 가며 엄마를 돌봤다. 왼쪽 발에 조금씩 힘이 주고 꿈틀거렸다. 재활병원을 알아보라는 의사 선생님 지시가 내려졌다. 익산에 사는 남동생이 알아보고 동생 가게에서 아주 가까운 재활요양병원으로 모셨다. 그렇게 여름 끝자락과 가을을 놓치고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작년 12월 마지막 날, 대전 건양대병원에 진료를 받고 오는 차 안에서 엄마가 딸에게 애원하듯 사정을 하셨다. '집에 가고 싶다고, 요양병원에는 숨 막혀서 못 살겠다고' 애원하던 그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음 날 바로 퇴원을 했다. 요양병원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도 퇴원은 위험하다고 말렸다. 혹시 넘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라고 겁을 주었다. 하지만 단호하게 퇴원을 원했다. 10년 넘게 아버지 병간호를 했던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집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재활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걱정 대신 친구의 말을 믿고 부딪혀보기로 했다. 엄마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와 약속했다. 집에 가시면 식사도 잘하시고 스스로 운동도 하셔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좋아지시면 3월에 안양에 사시는 이모들 만나러 가자고 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진 날이다. 퇴원하고 3개월 만에 엄마는 몰라보게 좋아지고 계시다. 눈에 띄게 좋아진 모습을 빨리 자랑하고 싶었다. 지팡이를 짚고 성큼성큼 내딛는 걸음걸이는 씩씩해 보일 정도다. 왼손은 둔하기는 하지만 마늘을 까고 나물도 캐신다. 텃밭에 쑥쑥 자라 나온 하루나도 뽑아 겉절이도 하신다. 손맛이 살아있다. 예전처럼 푸성귀를 까만 봉지에 담아놓고 얼른 갖다먹으라는 전화를 하신다. 엄마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적을 보고 있다. 매일 아침 이모 세 분이 돌아가며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주신다. 목소리만 들어도 엄마의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신단다. 눈앞에서 다시 찾은 엄마의 모습을 확인하며 고맙고, 행복하고 너무 좋아서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으신다. 꽃 같은 김밥을 싸서 다시 오겠다고 다음 만날 날을 약속한다. 잠들기 전 친정 언니가 보낸 카톡을 다시 읽어본다.  '오늘은 즐거운 날, 왜 즐거웠을까? 동생이랑 엄마랑 이모네 집에 가서 좋고 즐겁다. 엄마가 계셔서 고맙고, 운전해 준 동생이 고맙다. 이모 만나서 즐겁고, 엄마 기분이 좋아 보여서 좋고 덩달아 더 좋았다' 즐겁고 좋다는 말이 가득하다. "다시, 엄마의 봄이 안녕해서 지금이 좋다". 고 속엣말로 대답한다. 눈물 속에 후회가 흐르지 않도록 기다려 준 엄마가 고맙다.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날에 하고 싶은 일을 하나하나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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