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담다

첫 설빔을 입다

LO송이VE 2025. 1. 26. 13:03

설날이 다가오며 포근한 날이 이어진다. 이대로 봄이 왔으면 하는 생각을 절로 한다. 하지만 일기예보는 설날 전후로 폭설과 강추위가 찾아온다고 조급함을 깨워준다. 미세먼지 없는 아침, 쏟아지는 햇빛을 집안 가득 들인다.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떠다니는 먼지가 보일 만큼 밝은 햇볕을 쬔다. 온몸이 따뜻해지고 커피 향이 더 좋다. 면역력에 좋다는 영양제를 먹은 듯 가뿐하다. 슬슬 점심때 먹을 음식을 시작한다. 며느리가 들어오고 두 번째 설날을 맞이한다. 이번에는 6개월이 되는 손녀가 온다. 손녀 볼 생각에 자꾸자꾸 미소 짓는다.

 

명절 음식 생각하면 뻔하지만, 안 하자니 서운할 것 같아 미리 시장을 본다. 동생 가게에서 사 온 갈비부터 준비한다. 검색만 하면 나오는 레시피를 또 찾아보고 눈과 손대중으로 양념장을 만든다.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은 으레 배추겉절이를 꼭 담는다. 묵은지를 잘 먹지만 금방 버무린 겉절이는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 공기를 금방 비운다. 알배기 배추와 신문지로 돌돌 말아 저장해 놓은 무를 꺼내 나박김치도 담근다. 선물로 들어온 사과, 배, 귤도 나박김치 속에 넣어 달큼하고 시원한 맛을 더해준다. 애들 어려서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려고 요리학원을 다녔었다. 그때 배운 구절판이 생각났다. 잡채를 할까 하다 구절판으로 정한다. 설날에 떡국 한 그릇 먹어야 진짜로 나이 한 살 먹는 거라는 어른들 말 따라 떡국도 챙긴다.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고 와서 먹는 떡국처럼 입에 들어가자마자 '음~ 역시 이 맛이야.' 엄지 척 손가락을 상상한다. 컴퓨터 책상 앞에서 남편은 세뱃돈을 넣은 봉투에 덕담을 정성껏 쓰고 있다. 작은 아들도 조카 세뱃돈 줄 생각에 들떠있다. 설날은 며칠 뒤지만 우리 집 설날은 온 가족이 모인 오늘이다. 작은 아들은 전날 미리 왔다.

 

식탁 한 상 차려지는 색색의 빛깔들이 푸짐하다. 큰아들 내외가 언제 오나 수시로 밖을 본다. 코로나 때처럼 무서운 독감이 유행하고 있어 가족끼리 조용하게 설날을 보내자고 했다. 북적대며 설 명절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손녀의 예방접종 날짜도 다가오고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며느리가 손녀를 안고 들어온다. 행복이 들어오는 순간이다. 상 차리다 말고 손녀 앞으로 달려가듯 다가간다. 잠깐 낮잠 잘 시간이라는데 집이 바뀌어 어리둥절하며 잠이 달아나 버린다. 몇 분이라도 재우고 싶어 포대기로 업어준다. 그 사이 식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고 뭐 떨어진 거 있나 살핀다. 갈비 접시가 비워지고 배추겉절이는 금세 없어져 다시 담아준다. 배부르게 먹고 나서 과일 대신 가까운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사 온다. 커피를 마시며 세배 준비를 한다. 손녀는 설빔으로 한복을 빌려왔단다. 기분 좋을 때 얼른 입혀야 한단다. 돌 되는 아기가 입는 한복이라는데 너무 크지 않을까 했는데 얼추 맞는다. 치마와 저고리를 입히니 '어머나 예뻐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제대로 설날 분위기가 난다. 얼굴 반쯤 가릴 듯이 큰 한복 두건까지 씌우고 가져온 의자에 앉힌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 빨리 사진부터 찍어야 한다. 온 가족 핸드폰이 일제히 셔터를 누른다. 6개월 되는 손녀한테 받는 세배 풍경이다. 손녀를 품에 안고 거실 가운데에 남편과 나란히 앉는다. '아버님, 어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건강하세요' 큰아들 내외의 세배를 꼭 끌어안듯 받는다. 남편은 준비한 세뱃돈을 건넨다. 생각지도 못했는지 봉투를 받으면서 쑥스러워하며 좋아한다. 이어서 작은아들 세배를 받는다. 덕담은 항상 건강이 우선이고 행복해지라는 말이다. 가정을 꾸린 큰아들과 갈팡질팡하면서도 직장생활을 해 나가는 작은아들이 사뭇 달리 보인다. 세배를 받으며 또다시 첫 마음을 갖는다. 처음이라는 말과 시작이라는 말로 좋은 기대를 꿈꾸며 잘 살아가길 바란다. 명절 풍경이 작년과 올해가 또 다르다. 급변한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다. 차례를 아예 지내지 않고 제사만 모시는 집이 늘어가고 있다. 명절은 가족끼리 여행을 가거나 집에서 푹 쉬는 날로 변하고 있다. 좋아지는 만큼 편해지는 만큼 아쉬운 것들이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