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담다

마음을 나누는 저녁~

LO송이VE 2019. 9. 12. 09:01

퇴근하는 남편 손에 소라 한 자루가 들려있습니다.

회사 직원 중에 고향 서천을 다녀오며 은근슬쩍

챙겨주었다고 합니다.

소라 하면 시댁 큰형님이 딱 떠오릅니다.

참 좋아하시거든요.

그냥 지나치며 미룰 수 없는 일,

소라를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해야지요.


같은 동네에 사시는 큰아주버님과 형님에게

집으로 오시라고 전화를 합니다.

마침 농협 하나로마트 근처에 계시다는 큰 아주버님께

소주와 초고추장을 부탁드렸습니다.

그 사이 얼른 깨끗이 씻은 소라를 찜기에 올려

가장 맛있다는 시간, 15분정도 쪘습니다.


바다 비릿한 냄새를 싫어하는 아내를 대신해서

남편이 손수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먹지 말라는 부분을 꼼꼼히 떼어 먹기 좋게 손질합니다.

큰형을 부모님처럼 생각하는 남편입니다.

평소 라면 끓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이

'오늘저녁은 내가 요리사'라고 말해도 될 만큼 그럴 듯합니다.

특히 설거지는 그릇 깨질까봐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합니다.

가령 설거지를 했더라도 제 성에 차지 않을 테지만요.ㅎㅎㅎ


부들부들 연하고 쫄깃하다며 금세 접시가 비워집니다.

저녁나절이라 술자리만 하고 끝내는 게 영 마음에 걸립니다.

'청국장에 저녁까지 아예  드시고 가셔요' 했더니

저녁까지 주냐고 미안해하십니다.

소라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부리나케 저녁 준비를 합니다.


직거래장터에서 사온 골드라이스로 밥을 앉히고

청국장에 호박은 납작하게 썰어 들기름으로 잡내와 고소함을 더하고

고춧가루 좀 더 넣어 조물조물 해서 물 붓고 보글보글 끓였습니다.

선물 받은 고등어 두 마리 꺼내 식용유 두르고 소금 넣어 탁탁 소리를 낼 때 쯤

고등어를 넣습니다. 부엌에서 튀기면 연기와 비린내가 쉬 가시질 않아

아예 부엌 밖에서 휴대용 가스에 올려놓고 노릇하게 튀겼습니다.

며칠 전에 텃밭에서 뽑아 담은 알타리무우 김치도 알맞게 익었다며

맛있게 드시고  청국장은 별 맛없지만 고등어구이는 아주 맛있다고

생선가시까지 오독 오독 씹으며 용케 드십니다.


세분이서 소주 2병, 다음날 출근을 위해 적당한 주량입니다ㅎ

저녁까지 배부르게 잘 먹고 간다고 기분좋아하시는 두분모습에

제 마음이 더 좋습니다.

두분이 돌아간 뒤에 남편한테 으쓱대며 '나 오늘 잘했지?

복 받은 남편이야!' 하며 큰소리 좀 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