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간절 - 이재무

LO송이VE 2021. 2. 2. 07:00

묶여있는 몸은 가까운 부소산 산책을 하며 풀고

만나지 못해 시들하고 가라앉는 마음은

시를 읽으며 달래고 있습니다.

 

요즘 이재무 시인의 시를 찬찬히 읽고 있습니다.

 

간절

 

                              이재무

 

삶에서 '간절'이 빠져나간 뒤

사내는 갑자기 늙기 시작하였다

 

활어가 품은 알같이 우글거리던

그 많던 '간절'을 누가 다 먹어치웠나

 

'간절'이 빠져나간 뒤

몸 쉬 달아오르지 않는다

달아오르지 않음으로 절실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음으로 지성을 다할 수 없다

 

여생을 나무토막처럼 살 수는 없는 일

사내는 '간절'을 찾아 나선다

 

공같이 튀는 탄력을 다시 살아야 한다.

 

문학과 지성 (2011)

 

시소의 관계

                     이재무

 

놀이터 시소 놀이하는

아이들 구김살 없이 환한

얼굴 넋 놓다 바라다본다

저 단순한 동어반복 속에

황금 비율이 들어 있구나

사랑이란 비율이 만드는 놀이

상대의 무게에 내 무게를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엇나가기 시작한 관계들이며,

놀이터에 가서 어린아이로

시소에 앉아 보아라

놀이에 몰두하는 아이들은

그러자는 약속, 다짐도 없이

서로의 무게를 받들 줄 안다.

 

경쾌한 유랑

                                         이재무

 

새벽 공원 산책 길에서 참새 무리를 만나다

저들은 떼 지어 다니면서 대오 짖지 않고

따로 놀며 생업에 분주하다

스타카토 놀이 속에 노동이 있다

저, 경쾌한 유랑의 족속들은

농업 부족의 일원으로 살았던

텃새 시절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가는 발목 튀는 공처럼 맨땅 뛰어다니며

금세 휘발되는 음표 통통통 마구 찍어대는

저 가볍고 날렵한 동작들은

잠 다 빠져나가지 못한 부은 몸을,

순간 들것이 되어 가볍게 들어 올린다

수다의 꽃 피우며 검은 부리로 쉴 새 없이

일용할 양식 쪼아대는,

근면한 황족의 회 백과 다갈색 빛깔 속에는

푸른 피가 유전하고 있을 것이다

새벽 공원 산책 길에서 만난,

발랄 상쾌한 살림 어질고 환하고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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