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부부 - 함민복

LO송이VE 2020. 1. 17. 04:38

부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발.


'긴 상을 언제 들어봤더라....'

어려서는 엄마와 언니와 종종 밥상을

들고 안방으로, 마루로 조심 조심하며 발걸음 했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식탁이 있어 상을 들어야 할 일이

많지 않다.

손님맞이로 상이 더 필요할 때도 두사람이 드는 수고를

한 사람의 두손에 드는 쟁반이 한다.


눈높이와 발걸음을 맞추지 않는 순간

긴 상위의 물건들은 와르르 쏟아진다.


부부로 살면서 긴 상의 이치를 생각한다.



'시가 있는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0) 2020.02.28
설야 - 김광균  (0) 2020.02.19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0) 2020.01.15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0) 2019.10.07
국화 앞에서/김재진  (0) 2019.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