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어떤귀로....박재삼

LO송이VE 2015. 1. 23. 17:01

어떤 귀로

                              

                                   박재삼.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

촉촉한 밤이슬을 맞으며

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

 

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

먼지만 부옇게 쌓여 있는데

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 것들이

방안에 제멋대로 뒹글어져 자는데

 

보는 이 없는 것,

알아 주는 이 없는것,

 

이마위에 이고 온 별빛을 풀어놓는다

소매에 묻히고 온 달빛을 털어놓는다.

 

 

 

어린시절 방학때만 되면 외갓집에서 개학 전까지 보냈다.

외할머니는 시보리장사를 하셨기에 매일 아침 보따리를

바리 바리 싸서 장이 서는곳마다 돌아 다니셨는데

오일장마다 서는 부여장, 규암장, 은산장, 홍산장등..

가끔 이모 손을 잡고 따라 다녔던 기억도 있다.

 

깜깜한 저녁나절 장사를 마치고 마지막 버스를 타고

내리는곳에서 있는힘을 다해 외삼촌을 부르는 할머니목소리가

들리면 그곳과 외갓집까지의 거리가 꽤나 멀었는데

단번에 그 소리를 듣고 자전거를 이끌고 보따리를 싣고 왔다.

 

늘 무거운 시보리 보따리를 등에 메고 다녀 짝궁뎅이가

되어버린 외할머니는 지금 그 힘든 세월 다 까맣게 잊은듯

아무생각없이 요양원에 누워계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주 가끔 크림빵과 요플레를

사다드리는일 뿐이다.

당신의 모습을 알기라도 하면 얼마나 야속하고 서러울까.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