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담다

따뜻한 울타리

LO송이VE 2024. 12. 29. 09:11

펄펄 눈 내리는 밤을 보내고 더 환한 아침을 맞는다.

토요일, 음력으로는 11월 28일이다. 셋째 아주버님 환갑날이다.

아주버님의 축하 자리로 점심 초대를 받는다.

가정을 꾸린 두 딸과 직장에 다니는 막내아들이 음식 준비를 한다고 한다.

요즘은 어느 집이고 편하고 쉽게 식당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는 간단히 다과를 즐기는 정도다.

조카들의 손수 차림으로 대접받는 기분이 자꾸만 고맙다.

 

같은 동네에 사는 큰아주버님과 형님을 모시고 간다. 미리 준비하고 기다린 큰아주버님께서

트렁크에 김장 김치와 쌀 한 자루를 싣는다.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다.

자동차들이 앞마당을 꽉 차게 옆으로 나란히 줄지어 있다.

홍성에서 둘째 아주버님과 형님은 벌써 와 계신다.

 

내리자마자 화색이 도는 얼굴로 인사하기 바빠진다.

한참 만에 만나는 거라 목소리도 들뜨고 덥석덥석 잡는 손마다 따뜻하고 반가움이 크다.

현관 귀퉁이에 자리 잡은 큰 냄비 속에서 입 벌린 조개들이 뜨거운 김을 뿜어낸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맛있게 준비해서 드릴게요" 조카 큰 사위와 막내 조카가

불 앞에서 해물탕을 준비하고 있다.

거실에 들어서자, 잔칫날 분위기에 맞게 손주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조카 딸들이 벽면에 별풍선과 알파벳 풍선 글씨를 붙이고 있다.

"HAPPY BIRTHDAY 60" 눈꽃이 내려앉은 것처럼 반짝인다.

아주버님 얼굴이 들어간 미니 현수막은 아이들의 마음이 새겨져 있다.

"꽃다웠을 아빠의 청춘에 우리라는 꽃을 피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어떤날보다 더 활짝 꽃을 피우는 날이다.

 

몸이 아픈 셋째 형님을 대신해서 아주버님과 두 딸이 음식 준비에 분주하다.

거실 가운데에 상을 길게 펼치고 하나씩 음식들이 놓이기 시작한다.

음식 솜씨 좋은 형님처럼 딸도 사위들도 닮아가는지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계속 나온다.

더 이상 놓을 자리가 부족해질 때쯤 모인 식구들 모두 빙 둘러 얼른 앉으라고 성화다.

한 가운데에 셋째 아주버님이 앉는다.

촛불에 불을 붙이는 잠깐의 고요 속에서 딱 한 가지 건강이 최고라는 마음을 담는다.

이내 타오르는 불꽃 따라 신나게 합창이 이어진다.

이런 순간은 붙잡아둬야 한다. 동영상으로 찍고 사진으로도 연신 담는다.

방어회, 굴찜, 굴 무침, 홍어삼합. 꼬막무침 등 뭐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될 만큼 푸짐하다.

셋째 아주버님은 천천히 많이 드시고 저녁까지 드시고 가라고 한다.

'아침 굶고 오길 잘했지!' 속엣말을 하며 더 맛있게 먹는다.

목에 차오를 만큼 먹고도 쉬 젓가락을 놓지 못한다.

채워진 술잔을 넘길 때는 부드럽고 달다는 소리가 난다.

비워진 접시는 금방금방 채워지고 이리저리 자리 옮겨가며 건배 소리가 커진다.

행복이 소리를 내며 거실 안에 꽉 찬다. 배부른 속을 달래며 커피를 마신다.

딸기 향기 진동하는 케잌도 먹는다.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벽면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는다.

셋째아주버님과 형님 먼저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어서 셋째 아주버님 가족들이 앉는다. 세 살배기 손주는 방에서 자느라 빠진다.

그다음 4형제 부부가 짝꿍 옆 뒤에 자리를 잡는다.

4형제만 순서대로 나란히 앉아 카메라에 담는다.

세상 가장 행복한 시간이 고스란히 마음속에 저장된다.

오래될수록 퇴색되기는커녕 빛나는 것이 있다.

마음이 힘들고 어두울 때마다 그 빛은 더 반짝인다.

그리고 등 뒤에서 토닥거리고 꼭 안아준다.

 

언젠가 끄덕끄덕하며 메모해 둔 글귀를 다시 써본다.

가족은 치유다. 가족은 웃음이고 눈물이다. 그래서 가족은 감동이다.

부부만 남은 4형제는 각자의 집에서 잠들기 전

자장가처럼 들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깊은 잠맛에 취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