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봄눈, 궁남지를 걷다.
2월, 우수를 코앞에 두고 봄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나뭇가지는 제 무게를 감당치 못하는지 흔들흔들 휘청거립니다.
간간히 휘몰아치는 바람이 고맙게도 그 눈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합니다.
며칠 전 만해도 벌써 봄이 왔나 소리가 슬그머니 나왔는데
봄이다 싶으면 눈이 내리고 추위에 오돌오돌 떨게 만들며
조급한 마음을 혼내고 있습니다.
눈 내린 궁남지를 못 걸어보고 겨울을 보내는 거 같아
뭔가 찜찜한 아쉬움이 들었는데 이때다 싶었지요.
눈길 운전을 하다 놀랜 뒤로는 운전대를 잡지 않게 됩니다.
춥고 귀찮아서 가기 싫다는 남편을 꼬드겨 궁남지에
다녀왔습니다.
미끄러운 눈길에도 궁남지를 꼭 가야겠다고 한 것은 초저녁잠까지
반납해가며 주말 밤을 '철인왕후' 라는 드라마에 빠져있었습니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장소 한 곳이 바로 궁남지였거든요.
꼭 우리 집이 TV에 나오는 것처럼 마냥 좋고 반갑더라고요.
어떤 날은 반도 못보고 잠든 적도 있었지만 마지막 회까지
남편과 꼭 붙어 앉아 웃고 박수까지 치며 드라마라서 가능할 거 같은
말과 행동들이 유쾌한 부러움까지 느끼게 했습니다.
간 김에 드라마 주인공처럼 오붓하게 걸으면 얼마나 좋아요?
남편은 춥고 바람까지 너무 분다며 차안에서 기다린다고
사진이나 얼른 찍고 오랍니다.
더 말해봐야 소용없고 혼자서 옷 속까지 파고드는 찬바람을 맞서듯
연신 카메라에 담습니다.
30분이 지났을 무렵 춥다고 빨리 오라고 핸드폰이 울립니다.
그렇잖아도 추위 탓에 빨리빨리 걸으며 마음은 급해있었습니다.
남편이 술 마시는 날 전용 기사처럼 몇 시간이고 기다려줬는데
그 새를 못 참고 말입니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사진 속으로 들어가
눈 내린 궁남지 풍경 속을 느긋하게 걷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