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여승......송수권시

LO송이VE 2015. 4. 6. 11:05

 

 

 

여승(女僧)

 

                          송수권

 

어느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종일 방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집 처마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발치로 바리때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우는듯 웃는듯 얼굴상을 지었다

(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

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서서 합장을 하고

오던 길로 뒤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에 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여승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속에 산다는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만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 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