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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빚어 추억을 먹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선선합니다. 산에서 나는 예초기 소리가 집 앞까지 들립니다. 해마다 추석 전날에는 시댁 4형제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습니다. 아들, 딸과 손주들까지 다 모이면 서른 명이 넘는 대가족입니다. 식구들이 많아 차례 지낼 음식보다 끼니마다 먹어야 할 음식 준비가 더 힘듭니다. 특별한 요리를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도 부담이 됩니다. 다행히 위로 형님이 세 분 계시고 솜씨 좋고 손맛도 있으니, 막내며느리는 따라가기만 합니다. 그 밑에서 음식을 많이 배우게 됩니다. 남자들이야 '평소 먹는 데로 숟가락만 몇 개 더 놓으면 되지!' 툭 던지듯 말하지만, 여자들은 그게 아니지요. 매일 먹는 가족 말고 누군가가 함께하면 은근히 마음 쓰입니다. 큰형님은 멥쌀 불려 방앗간에서 빻아오고 동부 콩으로 속을 ..

일상을 담다 2023.09.17

텃밭의 휴일 아침

주말이면 두 아들로 북적대던 집이 이번 주는 고요합니다. 남편은 친구와 공 치러 가고 아들들은 친구들과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은 잠시,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편하고 좋습니다. 요즘 공부하는 신석정 시 '역사'를 위해 텃밭에서 달래꽃을 찾습니다. 이른 봄 가장 먼저 밥상에서 입맛 돋워주는 것이 냉이와 달래장이지요. 텃밭은 그새 장마에 더 쑥쑥 커버린 풀밭이 되어 있습니다 한판 대 결 하듯 작정하고 두어 시간 쪼그려 앉아 풀을 뽑고 한쪽 귀퉁이에서 달래잎 줄기를 찾았습니다 꽃은 없고 주위 땅속을 파보니 달래 씨가 우르르 모여 있더라고요.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달래꽃을 본 거 같기는 한데 달래장을 만들어 먹을 줄만 알았지 꽃 피우는 생각을 전혀 못 했습니다. 하찮게 여긴 거 같아 미안..

일상을 담다 2023.08.13

더위를 잊은 주말

주말이 휙 지나갔다. 가까이 사는 큰아들과 멀리 지내는 작은아들이 오면 주말은 북적댄다. 전에는 종종 금요일 저녁에 모여 집밥이 최고라는 아들의 애교에 으쓱하며 웃고 남자 셋이 도란도란 술잔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이야기는 꽃이다. 이제는 각자 직장과 취미활동으로 점점 뜸해진다. 남편은 이번 주말에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한다. 다행히 마을사업으로 지은 마을 찜질방 펜션에서 1박을 하기로 한다. 친구와 통화하다 느닷없이 모임 약속이 잡힌 것이다. 듣자마자 "일요일이 어머님 제사인데......."라는 말을 꺼낸다. "토요일이고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한다. 알아서 한다는 그 말에 또 속아 넘어간다. 토요일은 문학 활동으로 아는 분의 자녀 결혼식도 가고 싶고 제사는 큰집에서 지내지만 마음..

일상을 담다 2023.07.11

풀 향기는 내가 첫 번째~

풀 향기는 내가 첫 번째~ 끼니를 잊을 만큼 봄볕이 좋은 한낮입니다. 오가며 눈독을 들이던 쑥이 잘 자랍니다. 옅은 하얀빛이 감돌며 솜털까지 보이는 어린 쑥은 '예쁘다' 소리부터 하게 됩니다. 마당 돌담 사이로 듬성듬성 보였던 쑥이 수북수북 내 땅 자랑하듯 크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니 카메라에 찍히는 대접까지 받습니다. 지나가는 어르신이 한 주먹씩 캐가기도 합니다. 봄만 되면 쑥국은 기본이고 쑥버무리와 쑥개떡을 만들어 먹는데요, 특히 쑥개떡은 일 년 내내 먹는 간식입니다. 쑥 캐는 재미와 만드는 재미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봄 농사가 슬슬 준비되는 요즘, 논밭이나 길가 풀밭에 제초제를 뿌리기 전에 서둘러야 합니다. 마당 돌담 사이에 자란 쑥부터 바구니에 담습니다.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

일상을 담다 2023.04.07

친정 가는 봄날

바짝 다가온 봄입니다. 거침없이 부는 바람결에 여기저기 큰불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웃 지역에서 논두렁을 태우다가 산불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솔가지며 나뭇잎이 수북이 쌓인 곳은 잔불이 되살아납니다. 다행히 때를 알고 내리는 비처럼 한바탕 요란하게 봄비가 내립니다. 처음 듣는 빗소리처럼 새롭고 반갑고 고맙습니다. 뾰족뾰족 올라오는 새싹들은 쑥쑥 싱그럽습니다. 작년보다 많이 욕심내서 심은 감자밭에 풀풀 대는 먼지가 얌전해졌습니다. 비가 다녀간 후 하늘도 공기도 햇살도 더 산뜻하게 눈 부십니다. 문득 친정엄마가 슬쩍 지나가는 말로 부탁했던 잡채가 생각납니다. 매일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점심을 드십니다. 종종 배달 음식을 드시거나 나가 사는 자녀들이 찾아와 이것저것 사준다고 합니다. 친정엄마는 그게 마음에 걸렸던..

일상을 담다 2023.03.14